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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 적응 훈련

분꽃향기 2017. 1. 9. 00:24

 

2017. 1. 9(월)

 

2016년 11월 30일,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오후, 정든 충청지방의 사관님들과 작별인사를 하고 5년이나 살던 대전을  떠나는 심정이 만감이 교차했다. 감사와 허전함이 교차한다고나 할까! 이제 무거운 짐을 내려놓게 되어 좋다고 호언장담한지가 엊그제였는데 사람과의 헤어짐만큼은 어쩔 수 없는가보다. 송별의 기도를 하고 마지막 인사를 나누다가 잘못하면 울컥 눈물을 보일뻔 했다. 박병규사관님이 원주까지 데려다 주겠다는 것을 정중하게 거절했다. 이제 새로 부임하는 지방장관을 잘 맞이할 것을 부탁하며 빗길을 천천히 달렸다. 우리 부부는 말이 없었다. 드디어 우리의 보금자리 원주에 도착했다. 지방본영 리모델링 작업을 위하여 다른 곳에서 한 달 간 임시 생활을 하다가 내 집 내 침대에서 오랫만에 포근한 잠을 잤다.

 

우리 부부는 은퇴를 하고 원주에 정착했다. 바쁘게 살다가 갑자기 주어진 많은 시간에 적응해야 했다. 또한 14년 만에 돌아 온 원주에 적응해야 했다. 아침 해가 산위에서 떠올라 온종일 햇살이 드는 거실에서 사색에 잠겨 따뜻한 생각들을 하다보면 내 마음도 환해졌다. 음악과 함께 집안 구석구석을 파고드는 햇살이 고맙기만한 하루하루를 보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좋은 집을 주시다니 감사한 마음으로 이방저방 쌓여있는 이삿짐을 정리하였다. 남는 게 시간인데 뭐 급할게 있으랴. 힘들면 쉬고, 신이 나면 일하고, 필요한 거 사러 마트도 가고, 주일에는 교회에 가고, 병원에도 가고, 시장에도 가고, 그러면서 지냈다. 문제는 남는 시간이 아니라 곁에 있던 사람들이 이제 없다는 것이다. 있을때는 모르던 그 소중한 사람들!

 

우리는 서로 말은 안했지만 서로의 마음을 알았다. 김사관은 혼자서 산책도 나가고 산에도 갔다. 대중교통을 이용하여 시내에 나가 가끔 자선냄비 봉사도 하고 왔다. 나는 거의 집에 있었다. 김사관의 재촉으로 가끔 산책도 하고 산에도 따라갔다. 적응 준비운동인 셈이다.

 

오늘은 뒷산에 올랐다. 이름도 몰랐는데 입구 안내 표지판에 "금성산"이라고 써 있었다. 금성산은 집에서 5분거리여서 접근성도 좋았다. 숨을 헐떡이며 오르다 보면 가파른 날멩이 위에 쉼터 벤치가 있었다. 숨을 가라앉히며 올라오다 찍은 사진을 살펴 보았다. 올라오면서 마음에 느껴진 것이 있었는데 내려가면서 더 찍어야지.

 

올라오는 길 위에 소나무 뿌리가 내 손등의 파란 정맥처럼 통통하게 핏줄을 세우고 뻗어 있다. 비바람 모진 폭풍우를 견뎌내지 못하고 쓰러진 나무 기둥이 가로로 누워있다. 하나는 생명이 있는 것이고, 하나는 생명이 없는 것이다. 고통스럽기는 마찬가지겠지만 고통을 내색하지 않는 살아있는 나무와 아픔을 느끼지 못하는 죽은 나무가  산행을 하는 사람들의 디딤돌이 되고 있었다.

 

예수님은 구원의 디딤돌이 되어 주시려고 십자가에 못박히셨다. 생명까지 내어 놓으신 그 사랑과 희생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 죽은 나무도 사람을 위하여 제 몸을 내놓는데... 나는 누구의 디딤돌이 되었는가? 나는 누구의 디딤돌이 되어주고 있는가?

 

나는 이 자연나무계단을 밟고 올라가며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일부러 계단이 된 건 아닐 터이다. 나무뿌리가 없다면 미끌어질 수 있는 위험이 있을텐데 숨을 몰아 쉬면서 나무 뿌리를 디디고 한걸음 한걸음 위로 올라 갈 수 있었다. 산 중턱의 벤취에 앉아서 숨을 가다듬었다. 산 속의 공기는 얼음장 밑의 물처럼 차가우면서도 맑았다. 이 산 속의 공기 속에 몸에 좋다는 피톤치트가 가득 들어있겠지! 심호흡을 하며 들이 마시니 허전한 마음에 생기가 돌았다.

 

은퇴하고 이제 겨우 한 달 반!

이렇게 하다보면 잘 적응되겠지. 여유로운 시간과도, 헤어진 사람들과도, 제 2의 삶의 터전 원주와도!

 

   <거실에서 찍은 일출>

 

 

  <거실에서 찍은 일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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