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꽃향기 2006. 4. 2. 21:07

제 5회 구세군 문예상 <장려상> - 손수건


김계숙(마포영문)

 

 

  요즘 남편은 감기에 걸려 늘 손수건을  챙겨 가지고 다닌다. 오늘도 빨래줄에 손수건이 세 개나 걸려 있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깨끗이 세탁한 손수건을 쫙쫙 손으로 잡아당겨 네모반듯하게 펴서 차곡차곡 눈에 잘 보이는 전화기 옆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나는 다림질할 시간이 안 되면 이 방법을 가끔 쓰는데 부지런하지 못함이 보여 조금 부끄럽기도 하다.

 

  손수건!


  나의 눈물도 닦아주고 나의 콧물도 닦아주기도 하는 손수건! 옷을 잘 차려입고 어느 누구와 만나 식사라도 할 때, 냅킨이 나오지 않는 식당에서 내 무릎에 올려지기도 하는 손수건! 환절기에 어김없이 찾아오는 알레르기 비염이 여름이 가고 가을이 오는 길목에서 재채기와  콧물을 동반하고 찾아 왔을 때도 손수건은 나에게 고마운 존재이다. 손수건 하면 이별을 뜻한다고 하지만 손수건만큼 말없이 궂은일에 사용되는 것도 드물다. 한참 송창식과 윤형주가 부르던 “하얀 손수건” 이란 노래가 유행한 적이 있다.

 

 “헤어지자 보내 온 그녀의 편지 속에
곱게 접어 함께 부친 하얀 손수건~
고향을 떠나 올 때 언덕에 홀로서서
말없이 흔들어 주던 하얀 손수건~”

 

  연인의 눈물을 닦아주는 손수건은 애처롭지만 아기의 콧물을 닦아주는 엄마의 손수건은 사랑이 듬뿍 배어 나온다. 이가 나기 시작한 아기의 줄줄 흘리는 침을 닦아주고, 엄마의 젖을 먹은 아기가 토한 것을 기꺼이 닦아주며, 아기의 턱받이가 되어 주기도 한다. 이런 때는 주로 화려한 꽃무늬 손수건이나, 세련된 체크무늬 손수건이 아니라 하얀 가제수건이 사용된다. 아기에게 한 쪽 젖을 물리면 한 쪽 젖이 팽하고 도는 것을 젖을 먹인 엄마들은 경험했을 것이다. 부드럽고 흰 가제수건은 젖이 새어나오지 않도록 도와주는데, 하얀 속살의 엄마 젖무덤에 얹혀진 손수건은 정갈하다.

 

  아이가 자라 초등학교에 입학하면, 왼 쪽 가슴에 이름표와 함께 달고 다닌 것도 손수건이다. 옛날, 우리 어릴 적에는 누런 코를 질질 흘리는 아이들이 흔했다. 박박머리 사내아이들은 단발머리 계집애들보다 코를 더 많이 흘리고 다녔다. 과연 손수건은 위대하다. 누구의 손에 쥐어져 사용되던지 주인의 소용대로 눈물, 콧물, 더러운 일을 도맡아 한다.
 
  30년 전의 일이다. 햇병아리 시절 시골교회에서 귀한 손님을 맞이하게 되었는데 손수건을 하나 빌려 달라고 하셨다. 얼떨결에 찾아 낸 하얀 가제수건을 드리게 되었는데 며칠 지나고 나서 한 통의 편지를 받았다. 아무 도움도 받지 않고 시골 작은 교회에서 자체적으로 예배당을 짓고 헌당식까지 성대하게 치른 것을 칭찬하고 격려하는 내용이었다. 맨 마지막 줄에는 이런 말이 써 있었다.

 

  “손수건 고맙습니다.”

 

  그 한 구절은 아이 둘 낳고 키우며, 대전으로 공부하러 다니는 남편을 대신해서, 하우스에서, 논에서, 밭에서, 과수원에서 땀 흘리는 분들과 함께 한 새까맣고 촌스런 시골 가난한 여사관의 마음을 감동의 물결로 출렁이게 하였다. 그 격려의 글 때문에 가슴에 솟구치던 그 용기와, 그 고마움이 30년을 지난 세월 앞에서도 잔잔히 물결쳐 온다.

 

  손수건 하나!

  너무나 작은 것 때문에 얻은 기쁨이 이렇게 오래 갈 줄이야!
  손수건을 접다가 주님의 음성을 듣게 될 줄이야!

  “너도 손수건처럼 살아라 ”